나의 이야기

[스크랩] 나의 문학관(26회) - 김영숙 편

꽃귀신 2017. 2. 28. 23:14


나의 문학관 (26회)

- 김영숙 시인 편

김영숙 시인 연보





•경남 하동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월간『문학세계』등단(2015년)

•제25회 울산산업축제 문학공모 우수상 수상

•제1회 등대문학상 수상

•울산 남구 백일장 입상 외 다수 수상

•문학세계문인회 정회원

•울산공단문학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남구문학 회원

•詩나브로 동인






머무르지 않는 사랑, 그 채워지지 않는 시



1. 문학과 나의 집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은 한 줄기 햇살마저 인색했던 집이었다. 어머니가 삼신에게 허구한 날 빌어도 한 번도 배부르게 먹어본 적이 없던 집이었다. 웃음은 떠나고 어둠만 숱하게 쏟아지던 그 집을 이해하고도 남을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평생 바다에 몸을 싣고 사셨다. 분신 같은 고깃배를 끌고 들어오는 날은 대야에 담겨진 비릿한 물고기 냄새로 나는 수저를 챙겨야 할 때인 것을 알았다. 밥을 먹을 때 비린 냄새로 헛구역질하느라 밥알을 삼킬 수 가 없었다. 어머니는 뱃사람의 아내로 살면서 나와 같이 헛구역질을 자주 해댔다. 아버지가 오시는 날엔 뭔가 배부를 것 같은 날이었지만 술에 절은 아버지와 외삼촌들이 쏟아내는 한으로 오히려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다음 배가 나가는 날까지 술에 전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은 거의 투쟁에 가까웠다. 그럴 때마다 큰오빠의 침묵이 내 가슴을 저리게 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남다른 연민과 아버지와의 소통 부재는 우울증으로, 집착은 자식에게로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자식들의 눈에 비쳤던 상황들은 상처가 되었다.

나에게 집이란 단순히 몸을 의지하는 정물 같은 공간이었다. 세월이 한 많은 아버지를 삼키고서야 알게 되는 가족의 의미, 집안의 가장으로서 대우 받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너무도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시린 내 아버지

신새벽 차창에 피었습니다

한 생을 바다에 띄우셨던 아버지

으악새를 부르던 어깨 비린 통곡

지금도 둥둥 떠다닙니다

배를 타지 않겠다던 아버지를 내몰던 선착장엔

언제나 침묵보다 캄캄한 눈물이 어렸습니다

서리꽃을 타고 아버지의 바다에 닿습니다

수천 수만 개의 눈이 반짝입니다

그 침묵을 읽다 나는 흠칫 놀랍니다

경남 하동에 당신의 집이 바다에 들어찹니다

아버지, 내 안에서 어린아이로 뛰어놉니다

마당 한편으로 새가 날아듭니다

바다 싫다던 네 아배 새 되어 왔는갑다

어머닌 하늘 끝을 보십니다


신새벽

아버지 서리꽃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바다」



닻을 올린 파도가 하늘을 넘고 넘어

어머니는 만선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아버지와 함께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오색 깃발

어머니는 애창곡 하나를 끈끈히 목에 걸고 다녔다

종일 바다 냄새를 풍기다가

어머니는 사각 공간쯤에서 늘 아득해진다

기억 넝쿨은 지겹도록 아파트 담벽을 넘고

혈관에선 계절마다 다른 피들이 파도를 넘는다

애창곡은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 바다가 육지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의 노랫가락이 바람을 몰아

폭설은 곧잘

소나기로 쏟아졌다


—「바다가 육지라면」




  

2. 꿈마저 잃어버린 어둠의 시간

초등학교 4학년 때‘그림의 떡’이란 제목으로 쓴 일기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 가면서 교내 글짓기상과 그림상을 많이 받았다. 또한 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나를 집요하게 문학으로 끌고 갔다.
22살 무렵 한 남자와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꿈마저 잃어버린 어둡고 습한 음지에서 살았다. 그가 떠나간 후 길에서 커피, 생과일 주스, 잔술 파는 꼬치 리어카를 끌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이곳저곳 식당을 전전하며 어린 딸을 데리고 살았던 기억이 전부다.
지금의 남편은 외롭고 힘들 때 만났지만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더 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았다.


밥을 풀 때마다 손에 밥알이 붙는다 거의 본능적으로 밥알을 핥는다 입안에는 쌀독 긁는 바가지 소리, 내 아버지의 뼈 밥상에 얹혀져 있다 으스러질듯 그 뼈를 씹고 자라는 푸성귀, 파릇파릇 풀이 산다

29살 길마담이 삼천 원짜리 슬리퍼를 산다 이백 원짜리 커피가 지하 사무실에서 하늘까지 종일토록 달렸다 빨간 토끼눈 내 새끼에겐 뾰족구두보다 훨씬 멋진 공주 신발, 토끼가 평평한 부평동 길을 뛰어다닌다 걸음 따라 슬리퍼가 삑삑거린다 삑삑거릴수록 길마담은 싱싱한 새 살이 돋는다

산다는 건 내 아버지 뼈를 씹는 것, 내 어머니 심장을 긁는 것, 밥을 푸다
절로 배부른 내 봄날, 굶주린 벌판 초록으로 물들여질 즈음

—「밥을 푸다가」


곧잘 고주망태 되어오는 남자는 검은 번개를 불러와 거대한 비를 쏟아냈지 여자의 혀끝에 매달린 그는 크레인에 팍 죽고 싶다고 했어 우린 서로의 벽에 못을 박았던 거야 어떻게 밖을 나가는지 길을 잃었던 거지

화면은 수술 중, 시퍼런 불빛이 뼛속을 돌아다니고 서걱서걱 살들이 달아나고 소리들이 환장하고 못 자국을 메우는 물렁한 속아 푹 퍼진다 싸움은 수술처럼 찢기도 하고 봉합하며 사는 것인지

마취 중이었던 그는 술을 먹은 듯 한바탕 꿈을 꿨던 것일까 문(門)이 열리면 엄동 매화는 빛 조각에 머물고 우린 죽음 저 너머 세상에 있었던 거야 못다 한 말들은 시나브로 시나브로

—「수술 대기실에서」




3.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일

43살 이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둠의 단어들이 총집결된 생활이었다. 남편과 난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고 우린 서로 병들어 갔다. 나는 우울성 알콜리즘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나와 같은 환자를 위해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하면서 삶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양산병원 가는 길 위
땡볕에 말라 비틀어진 뱀 한 마리 누웠다
섬칫한 연민이 차오르고
천성산 깊이 묻어 둔 영혼이 불려 나온다
죽었지만 죽지 않는 숨소리
목덜미를 감는다
귀도 입도 닫은 채
똬리 같은 7병동을 휘감고
미라는 과거 속을 헤맨다

희망이 없을 때 절망도 없다
그들에겐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누군가 그들의 내력을 읽어낸다면
바위를 뚫는 눈물로 온몸을 녹이고
하늘에 가려진 먹구름을 볼 것이다
내 한 편의 삶이, 내 한 편의 돌이
거대해진 바위를 치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면

내가 거대한 바위가 되었을 때
자꾸만 돌멩이를 던져대는 누군가가 있었다
피할 수 없는 돌멩이에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알았다
절망의 그 순간
나는 바위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바위는 제 몸으로 뛰어든 또 다른 제 몸을
더욱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붉은 핏발만이 퇴색되어
검게 더욱 단단하게, 더욱 깊숙이
내 절망이 희망이란 걸 알게 한
저 자잘한 한 편의 돌, 한 편의 삶
나는 돌려주어야 한다
허공이 되어 날던 나의 한때를
아픈 것보다 더 아득했던
돌의 기억으로

—「메시지 가는 길」



4. 나의 문학은 참회이며 결핍의 소산이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영적인 책들을 섭렵한다. 이후 알 수 없는 어떤 존재의 빛을 느끼면서부터 생활이 술술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문학은 영적인 책들과 언제나 함께했다. 이집트의『사자의 서』, 인도의『바가바드기타』, 불교의『43장경』에서부터 신지학에 인도의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와 라마나 마하르시의 저작까지 훑었다. A.A 모임에서 내게 시발표의 기회가 주어지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면서 늦깎이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 후 ‘글쌈’ 문학동아리에 입회하면서 선배의 권유로 이자영 교수님을 만난다. 등단의 계기가 되었던 스승과의 인연이었다.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의 이론들을 배우고 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갔다.


나의 시는 지난 과거의 참회이며 결핍의 소산이다. 한 편의 시가 내 안을 카타르시스로 넘쳐나게 했다. 인생의 관점이 변하는 시기였다.


구비문학을 공부하면서 <칠성풀이>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무가에서 말하는 신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를 말하고 인간의 세계는 신의 세계를 말한다. 초월계와 현실계가 개별적인 세계인 동시에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총체적인 인간 세상의 모습이지 않은가.

현실을 탈피하고픈 인간의 심리가 신을 만들어 신성시하며 나약한 인간의 삶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삶을 버티는 힘이었는지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구원되길 빌었다. 나 또한 사이비 종교에 빠져 현실을 바로 읽지 못한 무지한 사람이었다.

이성보다 감정적인 상태, 지혜롭지 못한 지난 과거들을 세심하게 점검한다. 그것은 글의 소재이며 나의 삶에 지혜를 구하는 몸부림과도 같은 글쓰기 작업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여기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도 고민했다. 이젠 더 나아가서 독자의 가슴에 상처를 치유하는 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희망이 되었다.



에고─
저 화상 안 잡아 가고 귀신은 뭐하냐?
옛날 귀신은 정도 많아
웬만하면 잡아가질 않는다
요즘 귀신은 말끔하고 잘생긴 사이코다
외롭다고 악착같이 딱 붙어
같이 웃고 죽잖다 가만히 보자보자 하니까
가마니로 보이는 옛날 귀신
퉤퉤 침을 뱉고 어쭈구리 얼씨구절씨구 욕을 토한다
돌아버린 요즘 귀신
조상 탓이다고 벌레벌레 고함치는데
어이없는 옛날 귀신
엉덩이를 삐죽 삐죽거린다

삼국유사 ‘제망매가’에
향가는 귀신을 감동시킨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일러놓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굿판에서 걸판지게 감동하는 시
그런 시인이고 싶다
이런 굿판에서 살고 싶다

—「귀신타령」





[김영숙 시인 대표작품]



머무르지 못하는 것




이슬 알갱이가 공중에 갈기갈기 부서져 훨훨 증발하는 게 사랑이다 돌멩이 하나 풍덩 날아오면 호수는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물무늬를 피워주는 게 사랑이다 우물에 두레박을 던질 때 살점 한 바가지 푹 퍼서 올려주는 게 사랑이다 목구멍으로 뉘엿뉘엿 해를 삼키는 지평선도 온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게 하는 게 사랑이다 그러나 머무르지 못하는 것은 더 큰 사랑이다 천만 겁 넘나드는 시간을 두고 부대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돌탑 쌓는 사람




지리산 자락에 돌탑 쌓는 사람,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고 싶지만 관두기로 한다 너는 왜 사느냐고 물어 올 것이 분명하다 그는 돌장난보다 더 재미난 일을 모른다 무심한 그 어깨엔 하늘이 앉았다 일어서고 별들이 모여든다 한 생(生)에 별 하나 흠 하나, 부러져 나간 시간에 굄돌이 반짝이고 너럭돌보다 더 넉넉한 창공을 올려다본다





로드킬




세상 모르는 고라니 신작로를 가로지른다

가로등이 쏜살같이 자지러지고 퍼억 붉은 먼지가 튀었다

내달리지 못하는 길이 뎅강 끊어지고 달무리가 떴다

달무리… 달무리…

정신을 밖에다 두면 객사한다고 안으로 모으라던 말

그 말들이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숲이 피를 흘렸다

뎅강뎅강 소리들이 울었다

고개 넘는 한숨이 갈가리 찢어졌다

언젠가 길을 잃어 귀가하지 못했던 그날

새끼는 허공을 붙들고 별빛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때처럼 어미를 기다리는 숲이 한참을 울었다

목 놓은 소리들이 뚝뚝 부러졌다





미늘



덕하시장 후줄근한 역 부근
바람은 홍등가를 시도 때도 없이 흘금거린다
쭈그린 호기심 남몰래 흔들다가
은하수 명동 보리수 풍년
그럴듯한 명패를 달고 줄지어 서 있다
눈먼 물고기가 헛발질하는 바다 들머리
바람 한쪽 낚싯줄에 걸려든다
술그림자 다닥다닥 포개진 유리벽
촉촉한 눈들이 화면처럼 앉아 있다
물고기 한 마리
침침한 시간 속을 표류한다





삐뚜름한 노을이 좋다




헷갈리는 골목을 마주한다 구름의 결핍은 지는 해마저 삼키려 든다 망막 안이 바알간이 물들 무렵 일몰의 근원지가 대체 어디인지 나는 그 막연한 표정들을 읽어낸다 초가집 옛날 옛날 어머니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날 때면 돌아앉은 입이 식욕을 당겼다 저녁이면 자석처럼 집으로 끌려가는 아이들, 처음부터 숨쉬고 있던 집 처음부터 손길을 끌던 집,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골목 어디쯤으로 삐뚜름한 노을이 찾아들 그 그리움





 

 




출처 : 월간 문학세계
글쓴이 : 천우홍보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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